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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490] 벨트에 뚫린 구멍, 시대의 변화를 말하다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 2026년 9월 26일 ·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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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 보이는 통계 하나

영국 정부의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흔히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비유로 긴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는 이 표현이 말 그대로 현실이 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열쇠 복사와 구두·가방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생활서비스 체인 팀슨(Timpson)에서, 벨트에 구멍을 새로 뚫어 달라는 고객 요청이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언뜻 보면 사소한 생활 통계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 하나가 사회 전반의 큰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벨트에 새겨진 숫자들

전직 교도소 담당 장관을 지내고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팀슨 그룹 최고경영자(CEO) 팀슨 경(Lord Timpson, 55세)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매장에서 벨트에 새 구멍을 뚫어 달라는 요청이 지난해보다 여섯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번에 예닐곱 개의 벨트를 들고 오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하니,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의 폭이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마운자로(Mounjaro)와 위고비(Wegovy) 등 이른바 비만 치료제(체중 감량 주사제) 복용 확산을 지목했습니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직원들에게 자신의 줄어든 허리둘레가 바로 이 약물 덕분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팀슨 그룹은 벨트 구멍 수선 서비스 자체에는 비용을 청구하지 않되, 1파운드(약 1,900원, 2026년 9월 하순 기준 편집자 추정치) 수준의 자율 기부를 요청해 왔습니다. 정확한 건수 공개는 없었지만, 이렇게 모인 기부금 규모의 증가폭을 근거로 회사 측은 서비스 이용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추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런던대학교(UCL)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 사이 영국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세 지역에서만 16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체중 감량을 위해 이 계열의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향후 1년 안에 사용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인구도 33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팀슨 그룹의 살림살이도 함께 커졌습니다. 지난해 9월 마감된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 회사는 영업이익의 6%가 넘는 약 280만 파운드(약 53억 2천만 원)를 자선 및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했으며, 상당 부분은 전과자와 보호 종료 청소년 등 취업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팀슨 재단으로 흘러갔습니다. 1865년 제화공이 세운 이 가족기업은 같은 기간 매출 3억 6,700만 파운드(약 6,973억 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6% 성장했고, 자동차 열쇠 관련 사업 호조에 힘입어 열쇠 복사 부문 매출만 1억 100만 파운드(약 1,919억 원)에 달했습니다.

약이 바꾼 소비의 풍경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의약품 하나가 의료계를 넘어 소매업·서비스업의 일상적 풍경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비만 치료제는 이제 일부 부유층의 미용 목적을 넘어, 당뇨병·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한 처방 영역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보험 체계가 처방 문턱을 낮추고, 의료진 역시 비만을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복용 인구 자체가 구조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의류 수선, 재단, 세탁 같은 전혀 다른 업종의 매출과 서비스 수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의료적 변화가 사회 전반의 소비 구조를 얼마나 폭넓게 재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에도 다가온 변화

이러한 흐름은 이미 한국에도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계열의 비만 치료제는 국내에서도 도입과 처방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체중 감량이 만성질환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급격한 체중 변화는 근육량 감소와 골밀도 저하로 이어져 낙상이나 기력 저하의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물은 반드시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거쳐,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을 함께 고려한 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입니다.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할 때

기자는 이번 영국 사례에서 두 가지를 함께 읽어내고자 합니다. 하나는 의학과 산업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순기능입니다. 건강 관리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긴 이들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변화이며, 이를 일회성 유행으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지켜야 할 절제와 원칙입니다. 새로운 약물이나 시술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과도한 상업적 마케팅이나 검증되지 않은 오남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언론과 의료계, 그리고 우리 시니어 세대 스스로도 냉철한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눈여겨볼 대목은, 팀슨 그룹이 이 뜻밖의 호황을 사익으로만 거두지 않고 취업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재원으로 돌렸다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얻은 것을 나누고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함께 살피는 태도야말로 변하지 않아야 할 미덕입니다. 이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새겨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에피소드: 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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