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 2026년 9월 27일 ·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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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세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 Z세대 유통기업 리볼브 그룹과 손잡고 새 브랜드 창업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듯하다. 밀라노 패션 위크가 예상치 못한 소식으로 문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에서 현재 글로벌 브랜드 앰버서더로 활동 중인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월요일, 디자인 현장으로 복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만 그 무대는 정작 베르사체가 아니었다.
오빠 지안니 베르사체가 피살된 이후 그가 남긴 회사를 물려받아, 자신이 옷을 입힌 스타들 못지않은 명성을 쌓아온 이 71세의 시니어 디자이너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패션 및 뷰티 브랜드를 시작한다. 그녀가 손을 잡은 상대는 전통적인 럭셔리 산업의 노하우보다는 Z세대 특유의 감각과 디지털 유통 역량으로 이름을 알려온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통기업 리볼브 그룹(Revolve Group)이다. 새 브랜드의 명칭이나 본사 소재지, 가격 정책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도나텔라의 직함만은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 정해졌다고 알려졌다.
이번 발표는 프라다 그룹이 소유한 베르사체 브랜드와 창업주 가문인 도나텔라 사이의 관계가 사실상 종료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르사체는 이미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지난해 말, 도나텔라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단 한 시즌 만에 호평받는 컬렉션을 선보였던 디자이너 다리오 비탈레를 프라다 측이 돌연 교체하고 피터 뮬리에를 새 수장으로 앉힌 결정이 업계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낳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뮬리에의 베르사체 데뷔 무대는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어, 도나텔라의 신규 사업 공개 시점과 시기적으로 겹칠 가능성이 크다. 결투라 부르기는 과하겠으나, 그에 못지않은 팽팽한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안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순한 패션계 인사이동을 넘어선다. 71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은, 은퇴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례로 읽힌다. 창업주의 유지를 지키며 30여 년간 한 브랜드를 이끌어온 성실함과 책임감은 그 자체로 전통적 가치의 무게를 지닌다. 동시에 익숙한 럭셔리 문법을 고수하는 대신 젊은 세대의 감각을 지닌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점은, 축적된 경험과 새로운 흐름이 반드시 대립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 역시 정년과 경력 단절을 둘러싼 논의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는 시점이다. 오랜 경력을 쌓은 시니어 세대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나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하는 관행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무조건적인 예우가 아니라, 실제 역량과 시장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평가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이번 결단이 보여주듯, 축적된 경험이 새로운 도전과 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