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 2026년 10월 2일 · 22:28
Podli 앱에서 듣기 🎧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팔로우하고, 오프라인과 차 안에서 CarPlay 및 Android Auto로 듣고, 항상 멈춘 곳에서 이어 들으세요. 무료로 사용해 보세요.
아일랜드 럭비 대표팀과 먼스터 구단의 주장을 지낸 피터 오마호니가 은퇴 2년 차에 접어들어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37세인 그는 아일랜드 대표로 114경기에 출전한 베테랑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선수 시절의 지독했던 승부욕과 은퇴 후 달라진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는 인생의 후반기를 앞둔 시니어 독자에게도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마호니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은 운동선수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승부욕이 때로는 스스로의 길을 막고 절망을 불러왔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몸담았던 먼스터에는 한때 이른바 이기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럽 클럽 대항전을 앞두면 선수들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도 차갑게 대해야 경기의 무게와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살았으나, 팀의 지도자가 되고 나서는 다른 사람의 최선을 끌어내기 위해 유연해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변화의 계기는 가족이었습니다. 2023년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앞두었을 때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출국을 슬퍼했고, 그는 자서전에서 그 장면을 진솔하게 적었습니다. 이후 그는 홈경기가 있는 날 아침이면 세 아이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기적이지 않게 행동해서 무언가를 놓쳤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였습니다.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도자 평가입니다. 오마호니는 앤디 패럴 현 아일랜드 감독을 제외하면 거쳐 간 감독 모두가 조금은 미쳐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한 분야에 그토록 집착하려면 어느 정도의 광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패럴이 선수 시절에는 공격적이고 대립적이었지만, 그 성향을 선수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압박이 큰 환경에서도 소통을 잘 해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난 최고의 감독으로 패럴을 꼽았습니다.
조 슈미트 전 감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슈미트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아일랜드를 이끌며 2018년 그랜드슬램을 포함해 식스 네이션스(Six Nations) 챔피언십을 세 차례 제패하였고, 팀은 세계 랭킹 1위에도 올랐습니다. 오마호니는 슈미트의 전술 지시가 워낙 치밀해 자신은 아무것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면서도, 경기장 밖에서는 편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고 짚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라시 에라스무스 감독에 대해서는 선수 관리와 동기부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면서도, 폐쇄적인 소통 방식과 두려움을 심어 주는 면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짚는 균형 잡힌 시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일에 초연한 것은 아닙니다. 먼스터 구단과의 마지막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마음이 쓰리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은퇴 의사를 밝힐 때마다 구단이 일단 기다려 보자고 하여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받았고, 자서전에는 당시 감독이 신체 유연성을 증명해 보라며 바닥에 펜을 던졌다는 일화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먼스터를 사랑하며 클럽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섭섭함은 감추지 않되 애정과 예의는 잃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은퇴 후 그는 가드닝 생활용품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정원용 화분 제품을 갖추었고 앞으로 정원 도구 제품군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방송에서 럭비 해설도 하고, 집 정원 이야기와 계절별 가드닝 요령을 담은 책도 내기로 계약하였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에는 옛 소속 클럽인 콕 콘스티튜션에서 코치들을 거들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다만 정식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정원 가꾸기를 일종의 치료(Therapy)라고 표현하며, 식물이 자라고 성숙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매우 보람차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시니어의 은퇴 후 삶을 떠올렸습니다. 치열하게 일한 사람일수록 일에서 물러난 뒤 허전함과 상실감을 겪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마호니는 평생 쌓은 승부의 세계를 내려놓은 자리에 가족과 정원을 채웠습니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일은 서두른다고 되지 않으며,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결과를 다투던 사람이 과정을 즐기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기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길을 모두가 따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는 누구에게나 시사점이 있습니다. 평생의 직업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 소홀했던 시간은 뒤늦게라도 돌아볼 일이며, 오래 몸담은 조직과의 인연은 섭섭함 속에서도 품위 있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강인함만이 아니라 소통과 배려로 평가받는다는 점도 새겨 둘 만합니다.
인터뷰의 마지막은 유쾌합니다. 거쳐 간 감독 중 영국의 유명 원예가 몬티 돈처럼 침착한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답하였습니다. 승부에 모든 것을 걸던 사람이 이제 웃으며 농담을 건넬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변화가 곧 그의 두 번째 인생이 순조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