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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인(人)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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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기억, 그리고 떠나지 않으시는 한 분

가스펠인(人) 말씀묵상 · 2026년 9월 11일 ·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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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기억, 그리고 떠나지 않으시는 한 분


아무 일도 없는 저녁입니다. 혼자 있는 방인데,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이유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혹시 이런 순간을 아신다면,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리플러스 인간연구소의 박재연 소장은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저녁에 혼자 집에 있을 때, 아무런 자극도 없는데 초조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트라우마는 기억에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남습니다. 호흡이 얕아지고, 몸이 떨리고, 가슴이 조여옵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박 소장은 이것을 자주 어린 시절과 연결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오랜, 조용한 아픔과 말입니다.

그가 짚은 트라우마의 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벌어지던 그때,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서 학대 같은 상처는 만성적이고 반복적입니다. 방출될 틈도 없이 계속 쌓입니다. 그래서 몸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 잊었다고 여긴 뒤에도 말이지요.

그래서 이해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 깊이 묻혀 있던 이야기가 마침내 언어가 되고, 그때 내가 느낀 것이 형태를 갖출 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해가 치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종종 그 첫걸음입니다.

박 소장은 신체 감각으로 트라우마를 다루는 훈련의 한 장면을 들려줍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선생님이 한 사람을 불러 시연을 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첫 순서였습니다. 선생님은 자리를 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디에 앉고 싶으신가요?"

왜 그것이 첫걸음일까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는 바로 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안전이 조금씩 회복됩니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치유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박 소장은 제가 여러분과 꼭 나누고 싶은 말을 합니다. 그는 감정을 억눌러야 할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정은 오히려 신호등과 같다고 말합니다. 내가 바라던 무언가가 채워졌는지, 아니면 채워지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쁜 감정'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한 판결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아주 자주, 그것은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신호를 읽으면, 반응이 달라집니다.

혹시 내면가족체계, 곧 IFS의 언어에 익숙하시다면 이 대목이 낯익으실 것입니다. 박 소장은 어린 시절의 어떤 목소리가 마음에 남아 나를 몰아붙인다고 말합니다. "더 열심히 해. 남들 잘 때 자지 마." IFS는 이것을 우리 안의 한 부분이라 부릅니다. 적이 아니라, 지치도록 나를 지켜온 보호자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판단이 아니라 이런 물음으로 만납니다. "너는 무엇을 지키려는 거니?"

지혜롭고, 유용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 부분들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중심은, 내 안의 손상되지 않은 어떤 자아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 하나님이십니다. IFS는 마음을 읽는 좋은 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박 소장은 아름다운 희망의 그림을 하나 건넵니다. 어린 시절의 지지 기반을 실타래에 비유합니다. 얇은 실들이 꼬여 팽팽해집니다. 그런데 상처가 하나씩 그 줄을 끊어냅니다. 때로는 마지막 한 줄만 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의 희망이 있습니다. 단 한 사람과의 안전한 관계가 회복되어도, 그 줄은 다시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증거는 '전주 할머니'였습니다. 친할머니도 아니고, 아래층 주인집에서 일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혼나던 어린 그를, 할머니는 설거지하던 손 그대로 뛰어 올라와 안아주셨습니다. 축축한 손. 그 감촉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한 분은 희망이 실재한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박 소장이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단 한 사람의 안전한 관계가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도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자주 사람을 통해 사람을 돌보십니다. 교회를 몸이라 부르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축축한 손으로 달려온 그 할머니는, 하나님이 쓰시는 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주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조차 우리를 떠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복음은 더 깊은 말을 건넵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시편 27편 10절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영접'은 값싼 감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려고 그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그분은 자신의 아들 위에 쏟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스러워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사랑이 먼저 왔습니다.

그러므로 갈보리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제로 구원합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깊은 안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접하시는 근거는 우리의 회복 정도나 오늘의 감정이 아닙니다. 그 근거는 우리 밖에, 다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일에 있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설명할 수 없는 불안 속에 계시거나, 마지막 한 줄만 남은 것 같은 계절을 지나고 계시다면, 이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몸이 기억하는 상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이해가 첫걸음이고, 안전한 관계가 그다음 걸음이며, 마지막 닻은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여러분께 남겨 드립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여기고 계신가요? 나의 성취인가요, 나의 감정인가요, 나의 성과인가요?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다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일인가요?

그 질문과 함께 잠시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직함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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