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인(人) 말씀묵상 · 2026년 10월 2일 ·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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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때에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냈습니다(20절). 그러나 15장에서 그는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싸우지 않습니다. 아내를 빼앗긴 분노로 블레셋의 곡식 밭을 불사르고(4~5절), 블레셋이 그의 아내와 장인을 불태우자 다시 원수를 갚습니다(6~8절). 그의 싸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적인 보복이었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은 그를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결박하여 블레셋에게 넘겨줍니다(11~13절). 그들은 블레셋의 다스림 아래 사는 것을 이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네 차례나 그에게 임하셨고(13:25; 14:6, 19; 15:14), 하나님은 태중에서부터 그를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사사로서 받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19절)
묵상 포인트
보복의 고리를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7절).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11절). 삼손의 말에는 보복의 논리만 있습니다. 블레셋도 같은 논리로 움직입니다(10절). 상처가 상처를 낳고, 불이 또 다른 불을 부릅니다. 그런데 사사기는 이 일의 시작부터 그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14:4). 하나님은 삼손의 분노를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분노까지도 넘어서서 자기 백성을 향한 뜻을 이루십니다. 보복의 고리는 우리 안에서도 쉽게 돌아갑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을 때, 우리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롬 12:19). 지금 우리가 놓지 못하고 있는 보복의 고리는 무엇일까요?
익숙한 결박에서 풀어 주시는 여호와의 영
유다 사람들의 말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11절). 그들은 억압을 현실로 받아들였고, 그 현실을 흔드는 사람을 오히려 묶어서 넘겨줍니다. 자유보다 익숙한 굴레가 더 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이 갑자기 임하시자 새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떨어집니다(14절). 사람이 묶은 것을 하나님의 영은 푸십니다. 안타깝게도 삼손은 승리 후에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16절)라고 노래합니다. 승리를 주신 분을 잊은 것입니다. 우리도 오래된 상처나 죄의 습관을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갈 5:1). 우리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붙들고 있는 결박은 무엇일까요?
부르짖는 자의 샘
싸움이 끝나자 삼손은 심히 목이 마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그의 첫 기도를 드립니다(18절). 그는 하나님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구원을 베푸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중심은 여전히 자기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시고, 레히의 우묵한 곳을 터뜨려 물을 내십니다(19절). 그 샘의 이름은 엔학고레, 곧 ‘부르짖은 자의 샘’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부족한 사사를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기억합니다(히 11:32). 그것은 삼손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요 19:28) 하신 주님은 우리 대신 목마르셨고, 이제 우리에게 생수를 주십니다(요 7:37~38). 우리는 마른 자리에서 누구에게 부르짖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