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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인(人) 말씀묵상

가스펠인(人) 말씀묵상

우리가 교권보호국을 원하는 이유

가스펠인(人) 말씀묵상 · 2026년 6월 22일 · 18:25

0:0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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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교권보호국이 실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I'll be honest. I wanted him to be real.

고백
검은 정장 차림의 감독관 나화진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단순히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년간 쌓인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악성 민원에 지쳐 학교 교실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생님들의 이야기, 가해 학생을 지도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들의 이야기 — 그것들이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참교육〉은 6월 5일 공개 이후 단 3일 만에 64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비영어권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10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빠르게, 이토록 넓게 퍼진 이유 — 저는 그것이 단순히 액션의 쾌감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어 이야기 · Word Study

참교육

참 (眞) — 진실한, 올바른 / true, genuine, authentic
교육 (教育) — 가르치고 기르는 것 / education, formation, nurture

원래 '참교육'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범 당시 "인간을 위한 진실된 가르침"을 뜻하는 공식 슬로건이었습니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두루 사용되어 온 이 단어는,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단죄" 혹은 "응징"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드라마 제목은 이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품고 있습니다.

Originally coined as a progressive education reform slogan meaning "true and humane teaching," the term has been adopted across Korea's political spectrum, while evolving in internet usage to also connote punishment or comeuppance. The drama title holds both meanings deliberately.

현실
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이후 밝혀진 것은, 그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과 압박 속에서 극도의 직무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2023년 9월 4일 — 49재에 해당하는 날 — 전국에서 약 20만 명의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 해에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립학교 교사는 그만이 아니었습니다. 2018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100명의 공립학교 교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 중 57명은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드라마 〈참교육〉은 이 현실을 정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극 중 교사 '최가윤'의 죽음은 서이초 사건을 의도적으로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은 드라마가 "무너진 교실의 민낯과 손발이 묶여버린 교사들의 절망감을 가감 없이 고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갈망
교권보호국의 설정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국가가 공무원에게 물리적 개입 권한을 부여해 학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비현실성 안에 매우 현실적인 갈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피해자를 외면할 때, 누군가가 실제로 나타나서 피해자 편에 서주는 것. 그것은 유토피아적 환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갈망입니다.
드라마의 감동 포인트는 폭력 장면이 아닙니다. 교장이 눈치를 보고, 교육청이 뒤에 숨고,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 드디어 누군가가 공무원증을 내밀며 말합니다: "이 학교를 참교육 하겠습니다."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정의가 실제로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입니다.
저는 그 카타르시스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진지하게 신학적으로 읽고 싶습니다.

정의에 대한 갈망은 어디서 오는가

Where Does the Hunger for Justice Come From?

하나님의 형상
개혁신학의 시각에서 볼 때, 불의 앞에서 느끼는 분노는 감정적 과잉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약자가 짓밟히는 것을 보며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가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I.15.4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지성의 빛, 마음의 올바름, 모든 부분의 건전함"으로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불의를 보며 분노하는 양심은 타락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의 잔향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하나님께 직접 가져갔습니다. 시편 82편 3-4절: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며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낼지니라."
교권보호국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이 오래된 시편의 갈망과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국가는 검을 이유 없이 가지지 않는다 — 그러나 현실의 간극

The Governing Authority Does Not Bear the Sword in Vain — But the Gap

로마서 13장
로마서 13장 4절은 국가 권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이 본문은 국가 권위가 하나님께서 악을 억제하고 선을 보호하기 위해 세우신 도구라고 말합니다. 교권보호국은 바로 이 신학적 자리에 있는 상상력입니다 — 국가 권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제로 하는 기관.
그런데 현실의 비극은 여기에 있습니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법은 있지만 집행되지 않습니다. 2023년 9월, 교권보호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체감하는 변화는 미비하다"고 말합니다.
그 간극 — 제도가 약속하는 것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 사이의 간극 — 이 바로 〈참교육〉이 파고드는 자리입니다.

씁쓸함
〈참교육〉을 보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통쾌하지만 씁쓸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왜일까요? 드라마가 끝나면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나화진은 화면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씁쓸함은 드라마의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중요한 신호입니다 —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단지 한 편의 액션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짜 정의입니다. 단지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건에서. 단지 이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단지 지금만이 아니라, 영원히.
그것은 어떤 인간 제도도, 어떤 정부 기관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복음이 말을 걸어옵니다.

복음
이사야 11장 3-4절은 오실 메시아 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가난한 자를 공의로 심판하며 세상의 겸손한 자를 정직으로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이것은 교권보호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상상입니다. 뇌물로 움직이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절차 뒤에 숨지 않으며, 오판하지 않는 심판자. 모든 피해자의 편에 서되 자신이 그 피해를 직접 담당하시는 분.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세상에 오셔서 가장 큰 불의 — 죄 없는 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 것 — 를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정의의 부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정의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정의가 마지막 말이 되지 않으리라는 선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나화진은 피해자의 편에 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피해자가 되셨습니다. 그 차이가 복음입니다.

위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지금 교단에 서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 민원이 두려워서 아이들에게 해야 할 말을 못하고 있는 분. 교권보호위원회를 거쳤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분. 드라마를 보면서 통쾌했다가 집에 돌아와 다시 한숨을 쉰 분.
당신의 자리에서 매일 버티고 계신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제도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분노는 정당합니다. 그 피로는 진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어느 교육청도, 어느 교장도 보지 못한 것을 보시는 분이. 아무도 서주지 않은 그 자리에, 먼저 서신 분이.
그분은 교권보호국보다 늦지 않습니다. 그분은 판타지 드라마의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분은 실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분은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버티게 하는 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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